(민중의 소리) ‘장애인이 아이를?’ 편견에 가로막힌 장애 여성 재생산권-낙태죄 위헌 결정 이후의 과제 -강석영 기자 getout@vop.co.kr ‘장애 여성이 아이를 잘 키울 수 있겠어?’ 장애 여성의 돌봄 능력에 대한 의심은 성과 재생산 권리를 통제해야 한다는 논리로 이어졌다. 사회적 편견 속에서 장애 여성들은 ‘강제 불임 수술’ 대상이 됐고, 국가는 임신중지 허용 사유로 ‘우생학적’ 장애를 인정함으로써 이를 정당화했다. 지난 4월 11일 헌재의 낙태죄 위헌 결정으로 여성의 몸은 통제 대상이 아님이 분명해졌다. 임신·출산에 대한 장애 여성의 자기결정권 보장 방안이 지난 18일 서울 영등포구 이룸센터에서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이하 모낙폐) 주최로 열린 ‘낙태죄폐지 2라운드’ 공개토론회에서 논의됐다. 사회적 고립된 장애여성, 임신중지 정보 접근성 낮아 방안이 상담의무제? 안전한 임신중지 방해할 뿐 장애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가로막는 장벽으로 관련 정보의 접근성이 지목됐다. 나영 모낙폐 공동집행위원장은 “임신중지를 결정할 때 관련된 의료적·정책적 정보를 얻고, 그에 따라 필요한 사항들을 판단하거나 준비할 수 있도록 상담을 제공하는 것은 중요하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장애 여성은 비장애 여성보다 관련 정보를 얻을 기회가 적다. 배복주 장애여성공감대표는 “장애 여성은 사회적 관계에서 고립돼 적절한 정보와 상담을 받는 게 힘들다”라며 “장애 여성이 구체적 정보를 접하는 건 성적 침해를 당한 뒤 조력자의 도움을 받으면서다”라고 말했다. 이어 배 대표는 “장애 여성의 상담은 의료인에게 한정될 때 한계를 갖는다”라며 “장애인의 독립과 자기결정권을 지원·조력하는 시민사회 영역에서 정보 제공과 교육, 상담을 제공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춰야 한다”라고 말했다. 정보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상담 의무제’를 개정안에 넣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상담 의무제는 당사자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한다”라고 비판했다. 배 대표는 “시설에서 재생산 권리를 모르고 상담하는 경우가 많다”라며 “상담은 본인이 원할 때 적절한 공간에서 받고 싶은 사람에게 받아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상담은 의무화가 아니라 원칙과 내용이 중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나영 위원장은 “원칙에 따라 어떻게 상담 체계를 세우고, 접근성을 높일 것이며, 무엇을 보장할 것인지가 중요하다”라며 “이를 의무화하는 방향으로 가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그는 상담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으로 ▲정확하고 객관적인 정보 제공 ▲특정 종교나 개인의 윤리 기준에 따른 왜곡되고 편향된 정보 제공 혹은 그에 따른 설득·강요 금지 ▲내담자의 프라이버시 보호 ▲내담자 특성에 따라 필요한 정보와 지원사항 파악 ▲내담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와 자료 제공 ▲누구나 가까운 곳에서 상담을 편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 등을 제시했다. 제3자 동의 의무화는 인권 침해 당사자의 ‘충분한 이해에 기반한 동의’ 필요 ‘제3자 개입’은 장애 여성의 재생산권을 침해하는 가장 강력한 원인이다. 현행 모자보건법은 매우 제한적인 허용조건까지 배우자의 동의를 의무사항으로 두고 있다. 그러나 나영 위원장은 “배우자, 가족, 부모 등 제3자의 동의를 의무화하는 건 당사자의 주체성을 취약하게 하고, 의사결정을 가로막는 장벽이 될 수 있다”라고 비판했다. WHO는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보건 체계 가이드라인’을 통해 “제3자의 개입은 안전한 임신중지 접근을 방해하는 장벽”임을 분명히 했다. 또 “지지, 정보 제공, 교육을 통해 부모의 개입을 독려해야 하지만 필수적인 것으로 요구해서는 안 된다”, “기밀 유지는 의료 윤리와 사생활 보장의 핵심 원칙” 등을 제시했다. 배복주 대표는 “장애 여성의 의사결정이 쉽지 않다는 이유로 제3자 개입을 당연시한다”라고 지적했다. 이는 장애 여성이 ‘강제 불임 수술 대상’이 된 이유이기도 하다. 배 대표는 결정 과정에서 제3자 개입은 필요하다면서도 “정보 제공, 교육 등 그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제3자 동의가 아닌 장애 여성의 ‘충분한 이해에 기반한 동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나영 위원장은 “결국 우리가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원칙은 제3자의 동의를 의무화하는 게 아니라 당사자가 해당 의료행위와 자신이 결정 가능한 선택지, 그에 따른 의료적·사회적 조건과 지원사항 등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를 실현하기 위한 원칙이 ‘충분한 이해에 기반한 동의’”라며 “의료인과 관련 상담자는 당사자가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할 의무가 있다”라고 말했다. 배복주 대표 역시 “대리권 행사보다는 최선의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어떻게 조력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우생학적 인구관리 근거 모건법 14조 폐지해야 모자보건법 제14조를 폐지해 질병과 장애에 대한 접근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모건법 제14조 제1, 2항은 임신한 본인이나 배우자가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 질환이 있는 경우’,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임신중지를 허용하고 있다. 나영 위원장은 “(해당 조항은) 사실상 우생학적 목적의 인구관리 의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라며 “심지어 2009년까지 모자보건법 시행령에서는 해당 조항의 구체 사례로 ‘현저한 범죄 경향이 있는 유전성 정신장애’가 포함되기까지 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장애인 당사자가 임신중지 여부를 직접 판단할지언정, 부모의 장애는 임신중지를 당연시하는 조건이 될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중요한 건 부모와 태아가 특정한 장애나 질병이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아니라 출산해 양육하게 될 경우 국가와 사회가 무엇을, 어떻게 보장할 것이냐에 달려있다는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나영 위원장은 “국가는 보장·지원 체계를 마련하는 한편, 시설·부모·가족 등에 장애인의 몸과 섹슈얼리티 통제, 당사자 동의 없는 피임 시술, 장애인을 고려하지 않은 의료시설, 의료인의 무지, 기술적 개입의 문제 등을 법적, 정책적으로 함께 해결해 나가야 한다”라고 말했다.